일상/가끔씩 기록하는 하루

Tall Tales 관람 후기

도리언 옐로우 2025. 5. 10. 23:02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Thom Yorke), 선구적인 전자음악 프로듀서 마크 프리처드(Mark Pritchard) 그리고 호주 출신의 혁신적인 비주얼 아티스트 조나단 자와다(Jonathan Zawada)가 선보이는 ‘톨 테일즈’. 10년에 걸쳐 제작된 영상과 음악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톨 테일즈’는 전세계 극장에서 5월 8일 동시에 개봉하며, 단 하루만 상영한다. 단 하루만 상영한다...  단 하루만 상영한다..... 이건 가야지ㅎㅎ
 
라디오헤드가 2016년에 9집을 발매했을때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선공개 되었던 Burn The Witch 등 에서 또 다시 그들의 영역을 확장하려 하고 있는게 분명하게 느껴졌었고, 무엇보다도 그토록 오랜기간 라이브로만 존재하던 전설의 명곡 True Love Waits이 드디어 이번 정규 앨범에 그것도 마지막 곡으로 수록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20년동안 숙성된 True Love Waits은 분명히 같은 가사임에도 완벽하게 상반된 느낌을 발하고 있어서 여러 의미로 쇼킹했었다.
 
문제는 이후 약 1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감감무소식이라는 것이다. 위 True Love Waits이 그들의 100번째 LP 트랙이라는 점에서 라디오헤드가 사실상 은퇴했다는 썰이 점점 퍼져가고 있던데, 좋게 말할때 얼른 10집을 내고 내한하길 바란다. 톰 요크는 솔로랑 여러 프로젝트 밴드로 엄청나게 활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 본가에 비하면 약간은 아쉽다. 라디오헤드의 정상인 멤버(ex 에드)들이 지구에서 이탈하려는 톰 요크를 약간은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톰 요크가 라디오헤드는 내팽겨치고 10년동안 뭘하고 있었나 했더니 이 톨 테일즈란걸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예매하였고 KT&G상상마당의 시네마로 향하였다.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영화관. 마음에 든다..!

 
영화관에서 상영하길래 도대체 무슨 영상인가 했는데, 그냥 이번에 발매된 Tall Tales 앨범의 MV 집합이었다. 즉, Tall Tales 앨범의 사전 시사회 같은 느낌이랄까? 약 1시간 가량에 걸쳐 전곡의 MV를 영화관에서 감상하게 되었다. 한 앨범을 이렇게 좋은 환경(대형 스피커 + 모두가 정숙하고 있는)에서, 풀집중으로 들은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음악감상의 묘미는 역시 스피커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 같다. 유튜브에 선공개된 Tall Tales의 몇몇 곡들을 들었을때는 솔직히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 상상마당시네마가 꽤 조그만 영화관이었음에도, 집에서 유튜브로 들었던 느낌과는 비교자체를 할 수 없는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좀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유튜브로 들었을때는 그냥 여러소리가 2차원적인 평면에 갇혀있었다면 영화관의 대형 스피커에서 뿜어내는 소리들은 하나하나가 입체적으로 내 몸을 통과하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빠방하게 들으니까 왠지 음악이 좀 더 이해가 되는 기분도 들었다. 특히 위 Gangsters를 집에서 처음 들었을땐 꽤 구리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소리들이 하나하나 귀 바로옆에서 들리니까 분위기가 확 와닿으면서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왔다..! 노래가 구리게 들린다면, 사실은 디바이스가 구린게 아닌지 먼저 의심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한테 보여주면 바로 울릴 수 있을 것 같은 광기의 영상도 좋았다. 톰 요크라는 사람의 우주는 늘 나의 탐구대상이었는데, 그동안은 라디오헤드의 음악과 가사, 인터뷰 등의 한정된 도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더듬어보는 수준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고퀄의 시청각 자료와 함께하니 확실히 한층 더 깊은 탐험이 가능했던 것 같다. 아 저 사람은 이런 장면을 머리속에서 그리고 있었고, 이걸 음악으로 이렇게 표현해보려고 했구나... 역시 미친사람임이 틀림없어 등등. 여러 로봇팔들이 일사분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영상은 특히 기묘해서 기억에 남는다. 물론 톰 요크 혼자서 만든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진짜 미친사람은 마크 프리쳐드 내지는 조나단 자와다일 수 도 있다. 확실한건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의 우주는 언제나 꿀잼이라는 점이다.
 
쓰다보니 좋았던 점이 길어졌는데, 사실 안좋았던 점도 많다. 일단 음악 트랙 사이에서는 잠깐씩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여 맵을 이동하는 형식으로 다른 노래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한 2000년 초반 감성 느낌이 나서 솔직히 많이 조잡했다. 이런건 사실 애교이고,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자막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어 번역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원문이라도 띄워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가사를 모른채로 영상과 음악을 들어봤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후하게 쳐도 전체의 2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톰 요크의 가사는 자막이 있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슈가 있긴하지만... 자막만 있었어도 훨씬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Tall Tales 앨범판매. 그리고 조나단 자와다가 직접 디자인한, 영화와 앨범에 대한 인사이트와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진(zine). 뭔소린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 1픽 아티스트의 신작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상영관에서는 이 Tall Tales 앨범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부클릿을 포함하고 있는 초판 한정반 앨범을 바라보면서 정말 깊은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오디오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되뇌이면서 겨우 떨쳐낼 수 있었다. 라디오헤드 10집 초판 한정반이었다면 바로 두 장 질렀을 텐데. 언제나올까 대체